퓰리처상 사진전과 세계보도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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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사진전과 세계보도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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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사진전과 세계보도사진전



같은 사진, 달라도 너무 다른 전시


예술의전당 전시장 1, 2층에서 두 개의 저널리즘 사진전이 나란히 열렸다. <퓰리처상 사진전>과 <세계보도사진전 2010>이 그것이다. 두 사진전의 사진은 분명히 같은 종류의 사진이었으나 보여주는 것은 많이 달랐다. 그 차이가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세계의 저널리즘 사진의 형편은 어떤지, 세계의 사진가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또 한편에서 그 사진을 소비하는 우리는 어떻게 사진을 받아들이는지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피트강 대교 위에서 구조 RESCUE ON PIT RIVER BRIDGE(1954년 퓰리처상 수상작), Virginia Schau, The Sacramento Bee





터져 나오는 기쁨 BURST OF JOY(1974년 퓰리처상 수상작), Slava Veder, The Associated Press


느끼한 영웅담으로 넘쳐난 퓰리처상 사진전

<퓰리처상 사진전>부터 이야기해보자. 어떤 전시는 비판적으로 접근할 때 더 정확하게 보인다. <퓰리처상 사진전>이 그렇다. 먼저 우리가 알고 시작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는 퓰리처상은 사진상이 아니라 언론상이라는 점이다. 언론인이었던 퓰리처씨의 돈으로 만든 상이고, 컬럼비아대학 언론대학원에서 주관한다. 언론상이라는 이야기는 수상의 기준이 사진의 완성도가 아니고, 언론으로서의 역할이라는 점이다. 사진으로서의 가치보다는 뉴스의 가치를 따진다. 사진에 대한 고민이 심사의 기준은 아니다.

둘째, 퓰리처상은 전적으로 미국의 상이다. 퓰리처상 지원 자격 조항에는 ‘미국 신문과 주간지 혹은 뉴스사이트에 실린 사진만이 지원 자격이 있다’고 쓰여 있다.(문학과 드라마, 음악분야는 미국 시민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단다.) 한마디로 퓰리처상 수상 사진들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미국신문이 관심 있었던 사건들일 뿐이다.

그런데 <퓰리처상 사진전>의 광고 문구에는 이런 문구들이 보인다. ‘근현대사를 눈으로 익히고(중략)최고의 사진작품이 주는 감동과 함께 시사 상식을 익히는 기회’ 운운하는 말이다. 미국신문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몇 장의 사진이 정말 근현대사를 말할 수 있을지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다. 그보다 나의 관심거리는 사진이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 태도와 그 사진들이 감동을 준다고 말하는 태도였다.

이 사진들의 감동은 어디서 올까? 전시장에 가보면 재미있는 것이 있다. 사진마다 설명이 붙어있고 사진 제목은 조금 더 큰 글씨로 쓰여 있는데, 그 제목은 사진 속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은 사진기자들의 한마디였다. 이런 식이다. ‘(이 사진을 찍다가)저 녀석이 쏘는 총에 맞을 것 같아.’, ‘(그 장례식장에서)나도 울고 있었겠지요.’, ‘본능적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

저널리즘 사진전시에서 수상자들의 이야기를 함께 늘어놓는 일은 흔히 보아왔으나 그것을 사진의 제목으로 써붙이는 것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보았다. <퓰리처상 사진전>의 사진 제목은 사진가의 영웅담이었다. 이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 사진전은 사진기자들을 휴머니즘의 영웅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사진전의 감동은 사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진 설명이 만들어내는 영웅담에서 오고 있었다. 사진기자들이 그렇게 영웅일까? 개인적으로는 영웅담을 늘어놓는 기자들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영웅인지 아닌지 하는 이야기도 여기서는 하지 않겠다. 분명한 것은 이 사진전은 기름지고 느끼한 영웅담으로 넘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2개의 저널리즘 사진전이 동시에 열렸다.<사진제공 강신양 blog.naver.com/sinyang79>

 


강요된 감동이 주는 불편함

저널리즘 사진가를 영웅으로 포장하는 일은 오래전에 시작됐다. 1938년에 창간한 잡지 ‘픽쳐포스트’는 로버트 카파의 전쟁 사진을 많이 실었는데, 표지에 그의 얼굴을 넣고 ‘세계 최고의 전쟁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후 잡지가 전성기를 맞는 동안 사진기자들은 목숨을 걸고 세계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영웅으로 포장되어왔다. 저널리즘 사진의 전성기는 TV 시대가 시작되면서 끝났지만 미국의 저널리즘에는 아직도 그 향수가 남아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 사진들 자체의 모습은 어떨까? 전시장에는 트럭 한 대가 다리난간에 걸려있고, 사람이 줄을 타고 구출되는 장면의 사진이 있다. 미국의 교통사고를 지금 우리가 왜 봐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진에는 재미있는 것이 있다. 사진에는 구출되는 사람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화살표는 ‘여기 봐, 여기 보라구’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신문사진이었다. 신문사진은 무언가를 보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보여줄 수 있다고 스스로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다른 장르의 사진전 어디에서도 화살표가 그려진 사진을 본 적이 없다. 그 화살표가 ‘신문사진’과 신문사진이 아닌 ‘사진’의 약간의 차이를 보여줬다면, 그 차이를 확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보여주기에 집착하는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의 차이를. 저널리즘 사진이 왜 화재가 난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람에 열광하는지, 왜 다른 예술사진들은 그렇게 심심하고 무덤덤한지를.

볼 것을 강요하는 이 전시에서 감동을 받아 나왔다면, 그 감동의 정체가 무엇인지 반드시 생각해봐야 한다. 감동이나 생각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에 의해 방향 지워진 것이라면 찝찝할 테니까 말이다.





세계보도사진 2009 올해의 사진, Pietro Masturzo, Italy





세계보도사진 2009 제너럴뉴스 싱글부문 1위, Kent Klich, Sweden



낯선 사진이 던진 고민, 세계보도사진전

World Press Photo(WPP)가 주최하는 <세계보도사진전 2010>이 비슷한 시기에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전세계의 저널리즘과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사진전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전세계에서 촬영되고 발표된 사진들이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저널리즘 사진은 광고나 패션만큼 대중에게 가까운 사진이다. 그것이 얼마나 대중과 가까운지는 <퓰리처상 사진전>이 보여줬다. 하지만 <세계보도사진전>은 여러 가지로 낯설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몰랐던 뉴스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낯섦은 익숙하지 않은 사진의 외모에서 온다.

그 사진들이 낯선 이유는 지금 세계 저널리즘 사진가들의 생생한 고민이 사진에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도사진전>은 사진가들만이 아니라 심사위원들까지 자신의 고민을 말하는 현재진행형의 사진전이다. 전시장의 초입에 심사위원장 아이페리 에세르의 말이 조그맣게 붙어있다. 그의 말도 질문으로 시작한다. “한눈에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는 사진인데 어떻게 대상을 줄 수 있을까?” 그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 질문은 2010 세계보도사진 심사단이 논의했던 주요 내용 중 하나였다. 우리 중의 몇몇은 우리로 하여금 사진 속의 무언가를 더 찾아보도록 유도하는 피에트로 마스투르초의 수상작에 처음부터 끌렸지만, 또 다른 이들은 즉각적인 맥락의 부재에 대해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어떤 이는 사진이란 하나의 프레임 안에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 반면, 어떤 이는 이러한 모든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후자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강요당하고 싶지 않다고, 단지 사진이 감정을 유발하고 과거를 돌이켜보게 하며 창조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문을 열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결국 현직 사진기자와 편집자, 사진기획자들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단은 피에트로 마스투르초의 사진에 ‘Photo of the year’(올해의 사진)라는 WPP의 대상을 수여했다. 그의 사진은 이란에서 치러진 대선 선거 직후, 그 결과에 저항하는 이란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사진은 거리에서 이루어진 격렬한(결국 8명이 사망한) 시위 장면이 아니라, 밤 동안 건물 옥상에 올라가 구호를 외치는, 이란식 시위의 모습이다. 아무도 첫눈에 그것이 시위라고 알아보지 못하는, 평범한 이란 동네의 모습이다.

왜 이 사진이 대상을 받았을까? 실제로 그 시위 동안 거리에서 시위대와 경찰에 휩쓸리며 뛰어다녔던 사진기자들은 이 대상의 결정에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그들의 애씀을 무시하지 말라고 했다. 그날 거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스팟뉴스 스토리부문 2위상을 받는데 그쳤다.





세계보도사진 2009 특별상, 네다 아가 솔탄(Neda Agha-Soltan)으로 알려진 여인이 이란 대선 후 벌어진 시위에서 가슴에 총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모습을 담은 휴대전화 동영상(2009.6)의 정지화면. 이 작자미상의 영상 이미지로 WPP는 특별상을 다시 제정했다.


저널리즘 사진은 질문 던지는 시각적 퍼즐

함께 생각해봐야 할 한 장의 사진이 더 있다. 이 해에 심사위원단은 ‘특별상’ 하나를 수여했다. 역시 이란의 시위 도중 경찰의 총탄에 가슴을 맞아 쓰러진 여인의 모습을 찍은 휴대전화 동영상의 정지화면이 특별상을 수상했다. 당시 이 동영상은 유투브에 올려졌고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았단다. 추모행사가 연이어 열렸고, 이 장면은 이란 정권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WPP측은 특별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 사진을 빼놓는다면, 그해의 뉴스를 추리는 게 불가능할 정도의 이미지이나, 비전문가에 의해 촬영된 사진이어서 특별상을 수여한다고. 인류의 달 착륙 사진이 WPP의 첫 특별상을 수상했고 그 뒤로 몇 십 년 만에 특별상이 부활한 것이다. 이 ‘특별상’의 재제정 역시 지금의 사진 환경의 변화를 말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걸린 3장의 이란 사진은 현재 보도사진의 상황과 사진기자들의 고민을 보여준다. 대상을 받은 이란의 밤 사진, 거리의 격렬한 시위 사진, 그리고 휴대폰으로 찍힌 사진이 그 3장이다. 거리를 뛰어다닌 사진기자들의 사진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보다 더 영향력이 있었을까? 휴대전화의 사진은 이란의 상황을 제대로 보여준 걸까? 죽어가는 사람을 휴대폰으로 들여다보는 일은 바람직한 것일까? 사진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심사위원 케이트 에드워즈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진의 선택은 하나의 테스트이기도 했다. 우리가 찾는 이미지는 보는 이를 보다 깊게 끌어들이고 많은 생각이 들게 하며 이미 아는 것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는 그런 사진이었다.”

심사위원장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목록이 아니다. 이는 사진적 여행이며 사진가의 관점을 기리는 시각적 퍼즐이고 보는 이로 하여금 최대한 돌이켜보고 질문하며 즐길 수 있는 각 부문의 최고의 작품들이다.”

저널리즘 사진이 돌이켜보고 질문하게 만드는 시각적 퍼즐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세계보도사진전>을 보고 나올 때, 그 앞까지 줄 서있는 사람들이 <퓰리처상 사진전>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퓰리처상 사진전>을 보고 나왔을 때 WPP가 준 이런 궁금증과 막연함이 그때도 남아 있었는지 자연스레 둘을 비교하게 되었다. <세계보도사진전>이 텅 빈 뜨거움을 주었다면, <퓰리처상 사진전>은 기름진 더부룩함을 준 듯하다. <퓰리처상 사진전>측은 그 사진들로 무언가를 배우라고 말하지만, 이들을 보고 뭔가를 알았다고 생각하는 행위는 WPP 심사위원들이 말 한대로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저널리즘 사진가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 같은 고민이 언론인들에게 없을 리 없다. 그런데 왜 퓰리처상에서는 그런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걸까? <퓰리처상 사진전>에서만 그런 건가? / 글 채승우(사진가)<월간사진 2010년 9월호>




채승우는 조선일보 사진기자로 개인전 <깃발소리>(2003), <경제연감>(2006), <신반차도>(2008)를 연 바 있으며, 낸 책으로는 사진 찍기에 대한 입문서인 ‘사진이 즐거워지는 사진책’(2004), 유럽을 여행하며 쓴 사진 이야기인 ‘사진을 찾아 떠나다’(2010)가 있다.

 

 

 

 

 

 

 

 

 

 

 

 

 

 

 

 

[이 게시물은 권학봉님에 의해 2018-04-04 21:05:40 사진조명 동영상 강의에서 복사 됨]

8 Comments
M 운영자 2015.09.03 23:58  
좋은 글이네요.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는건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퓰리처상과 세계보도사진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주체 그리고 그 를 통해서 문화적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 일종의 보도사진 헤게모니에 관한 글이네요. 한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알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드립니다.

축하합니다. 37 럭키 포인트를 받으셨습니다.

25 stormwatch 2015.09.08 23:01  
씁쓸하지만...그래도 알아야 될 부분인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축하합니다. 7 럭키 포인트를 받으셨습니다.

3 BALCAR 2015.09.04 04:17  
생각할 수 있는 글 감사합니다.
25 stormwatch 2015.09.08 23:02  
넵 감사합니다
22 비목어 2015.09.08 05:04  
집에 티비가 없으니 글 읽기는 좋은데요...
요즘 이방 글읽으랴,....책보랴....머리가 과부하입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25 stormwatch 2015.09.08 23:02  
천천히 하십시요^^;
2 감성샷 2018.06.19 23:07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25 stormwatch 2019.11.23 20:41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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