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아베돈 : 가식과 진실의 폭로

유저사진강좌&팁

리차드 아베돈 : 가식과 진실의 폭로

25 stormwatch 1 3561 0 0

 

 

 

2002_06_01.jpg2002_06_02.jpg
 
2002_06_03.jpg2002_06_04.jpg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마스크(masque) 즉 가면이라는 것은 원래의 얼굴을 숨기면서 자신이 의도하는 혹은 타인이 요구하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지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보다 개념적인 측면에서 볼 때 마스크는 근본적으로 어떤 대상의 본질을 감추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또 다른 대상을 지향하고 있다.
 
 의식주를 위한 투쟁만이 존재한 원시 사회에서 마스크의 개념은 무의미하였지만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집단 공동체(사회)에서 마스크는 언제나 본질에 선행되었다. 계급 도덕 관습 의전 등을 기반으로 그리고 언제나 형식을 우선으로 하는 전통 사회에서 모든 진실은 의도적으로 감추어지고 마스크는 오히려 점진적으로 정당화되었다. 결국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마스크는 체면, 물질 과시, 소비 풍조, 유행 추종 등으로 포장된 물질 사회에서 대상을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인 동시에 유일한 가치가 되었다. 그것은 사실상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일종의 정신적 딜레마이기도 하다.
 
  어떤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재현, 즉 닮음(ressemblance)에 있어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재현 방식이 있는데 즉 대상의 외형적 복사를 말하는 외적 닮음과 정신적 재현인 내적 닮음이 있다. 재현 영역에서 이와 같은 두 가지 상이한 닮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체적인 영역은 바로 인간을 모델로 하는 초상 영역이다. 엄밀히 말해 역사적으로 위대한 초상화가들이 재현하고자 한 것은 궁극적으로 모델의 보이는 외적 닮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은닉된 존재의 진실 즉 내적 닮음이었다.
 
  원래 인물 초상은 인간의 죽음에 공헌된 예술이었다. 거의 인간의 역사와 함께 이해되는 초상이라는 재현 양식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죽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이미지를 보존하려는 본능적 욕구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초상은 단지 인간의 육체적인 사라짐뿐만 아니라 그 존재의 사라짐에도 관계한다. 다시 말해 초상 이미지(석상 동상 그림 등)는 일생 동안 변하는 얼굴의 외면에 반(反)하여 그 사람의 불변하는 “존재”를 보존하여 사회 속에서 영속시키려는 욕구(앙드레 바쟁의 사진 방부제 역할)에서 나온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인간은 자신의 이미지를 재현할 때 외적 닮음이 재현의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이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으로 오늘날 초상 이미지와 같은 외적 닮음을 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죽은 이의 전 생애를 총괄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에서 고인의 유품과 같은 내적으로 일치하는 정신적 상징물이나 상형문자로 그 사람을 대표했다 : 이집트의 초상 작가는 고인의 친구나 가족에게 어떤 목록에서 고인의 것과 유사한 눈 코 입 귀 등의 타입들을 선택하게 하였고 또 이러한 방식으로 구성된 초상 ① 을 몸통과 함께 매장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그 무엇도 시각적인 외적 닮음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정신적 닮음을 위함이었고 상형문자의 주석은 고인의 내적 닮음 즉 “증명”에 그 목적이 있었다. 결국 고인의 진정한 닮음은 이미지가 아니라 단어에 있었다.
 
  그 후 집단 사회와 계급 사회가 보다 분명해지면서 인간의 내적 닮음의 재현은 점진적으로 외적 닮음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닮음은 의도적으로 가식화 되어 거의 반 신성화되었다. 예컨대 로마 시대 이데올로기 예술에서 나타나는 신격화 된 두상(귀족의 상징)은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다.  로마시대의 두상은 고전시대를 지나면서 귀족과 통치의 상징인 초상화로 전이되었고 그 신성화는 더욱 더 규범화되었다. 그것들은 엄밀히 말해 변하는 얼굴의 외면보다 그 사람의 내적 “존재”를 신성화하기 위한 본질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이러한 예술의 신성화(아우라)는 집단 체제의 통치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정치적 도구 ②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19세기 과학적 실증주의와 초상사진의 출현은 재현에 대한 모든 인식을 완전히 전복시켰다. 전통적 초상화의 규범에서 모방된 부르조아 초상사진은 사진 마스크를 결정적으로 합법화시켰는데 왜냐하면 합리주의와 실증주의의 사고는 더 이상 내적 닮음을 인정하지 않았고 유일하게 사진이 외시하는 외적 닮음만이 재현의 주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후 우리는 오늘날까지 외관을 진실로 믿는데 너무나 익숙하게 되었고 사진이 외시하는 “증거”로서의 외관(시각적 정보)에 속임을 당하게 되었다.③ 결국 “19세기에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것은 곧 진실이 되었고 동시에 모든 진실은 사진 위에서 끝나게 되었다”.④ 
 
계몽시대 이후 집단 사회는 평등과 민주라는 관념적인 명분을 걸고 통제를 위한 엄격한 제도적 장치를 세우면서 교묘히 집단 사회를 계층별로 서열화(집단 이기주의) 시켰는데 이는 곧 실질적으로 계층간에 신분상승의 불가능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물질사회에서 인간의 신분상승의 욕구를 채우는 유일한 수단과 방편 그것은 바로 자신의 외적 닮음을 위한 개념적 포장(위장된 가식과 제스처)이 되었다. 왜냐하면 모든 가치와 서열은 이미 형식화되어 있고 물질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계급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필연적인 것은 수많은 형식들 즉 가식들인데, 가장 대표적으로 의례 예식 장례식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마치 사진 정착 욕조에 연속적으로 나오는 가식적이고 인위적인 사진들과 같다. 왜냐하면 모델은 찍힌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의도적으로 타자가 인정하는 마스크(포즈나 제스처 혹은 상황)를 쓰기 때문인데 이러한 이미지들을 일종의 가장 행렬이라고 할 수 있다(라 로슈푸코).⑤ 결과적으로 오늘날 물질사회의 대중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초상사진을 일종의 신분 마스크로 믿게 되었고 특히 신분 상승의 욕구를 채우는 유일한 방편이 된 초상사진은 그 사람의 모든 외적 닮음을 합리화시켰다. 중요한 것은 내적 재현이 아닌 사진 마스크를 통한 외적 닮음(사진 판박이)의 사회적 문화적 혹은 정치적 인정이었다. 바로 이러한 인정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맹신, 그러나 이는 이성과 물질 그리고 과학 지상주의가 만든 분명한 착각이다.
 
  19세기 문학에서는 거의 대부분 “이중 인간”이라는 실존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예컨대 당시의 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재현에 있어 적어도 외적인 인간과 그 이면에 정신적으로 존재하는 본질적인 인간과 혼동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동전의 앞면을 보고 동시에 뒷면을 짐작하듯이 인간의 이중적인 측면을 동시에 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의 묘사는 사진에 모든 그 증거와 진실을 부여하게 되었다. 초상사진은 단지 모델을 있는 그대로 찍어낸 외형일 뿐이다. 존재론적 관점에서 인물 초상은 그 본질을 감추고 있는 단순한 외형 즉 마스크 혹은 껍질에 불과한 것이다.
 
“사진은 그 자체로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본질은 응시자의 상상적 의식 행위에 의해 포착된다(사르트르의 상호 주관적 차원)”. 결국 사진에 보여진 인물의 본질은 그 사람과의 과거 경험과 내적인 접촉에 의한 타인의 상상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이중으로 된 두 가지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 프루스트는 그의 소설에서 인간을 시간에 따라 변하는 공간적 자아(Moi)와 언제나 불변하는 심층 자아(Moi)의 이중으로 겹쳐진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죽음이라는 종착역으로 가는 생물학적 외형으로서 자신과 언제나 불변하는 자신이 겹쳐 있고, 20대 자신이 사랑했던 어느 첫사랑의 여인 이미지는 몇 십 년 후 전혀 다른 모습이 된 그 여인의 이미지와 겹쳐 있다. 사진은 시공간의 연속에서 변화된 물질의 크기와 양을 비교하게 하는 정도상의 차이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베르그송은 “사물의 사진적 외관은 감각이 아니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리차드 아베돈이 자신의 인물사진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궁극적으로 “내적 닮음의 진실”이다. 이때 사진 촬영의 행위는 물질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한 모든 마스크(가식)를 제거하면서 본질을 누설시키는 말하자면 “탈 마스크화” 혹은 “탈 신비화”(desmasquage)시키는 제스처로 간주된다. 우선 작가는 모델 선택에 있어 대부분의 경우 의도적으로 과거 뭔가 성공한 늙은 유명인사(사진1)를 택한다. 이러한 제스처 그 자체가 이미 마스크에 의해 신성화된 대상에 대한 진실의 폭로로 이해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생물학적으로 동물에 불과한 것이고 그 누구도 죽음 앞에서 신성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서 가식과 허무 그리고 모순은 은밀히 폭로된다.
 
  탈 마스크화 작업의 두 번 째 제스처는 인물 재현에 있어 의도적인 “극사실”이다.⑥ 이러한 표현 방식을 통해 의미적으로 단순한 대상의 순간 포착이 아닌 사진의 어원학적인 용어인 “기록(ecrit)”을 들추어낸다. 여기서 기록은 결국 재현에 있어 노출적이고 폭로적인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를 위해 작가는 의도적으로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도 허락하는 큰 사진판(Rolleiflex 5.57×5.57 / Deardorf 8×10)⑦ 을 활용한다. 이처럼 인간의 눈보다 더 무차별한 눈으로 재현된 사진은 결국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태어나서 늙고 죽는 나약한 동물에 불과함을 암시하고 있다. 의심할 바 없이 거기서 품위와 체면은 분명한 가식과 허무(시뮬라크르)로 나타난다.
 
  끝으로 이러한 탈 마스크 작업은 또한 모델의 조형화에 의해 특별히 강조된다. 정면성, 단순성, 흰 배경, 무차별한 조명, 클로즈 업, 지나치게 과장된 실물 크기 사이즈 등은 촬영상의 상황 설정에 따라 대상을 왜곡시키면서 거의 설정된 인물을 비현실적인 일종의 환상으로 만든다. 더욱이 재현된 인물 사진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된 액세서리와 의복의 강조는 우리의 의식을 문화와 자연의 극단적인 경계면으로 이동시키면서 가식과 진실을 생생히 폭로하고 있다.
 
  특별히 1976년에 출간된 초상사진(Portraits)은 이와 같은 탈 신비화 작업을 결론지을 수 있는 중요한 작업들을 포함하고 있다. 언제나 인물 사진은 하나의 허구임과 동시에 드라마나 소설과 같은 사진 촬영자의 창작물이기도 하다 : 예컨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미 사회화 되고 문화화 된 모델과 촬영자는 그들이 취해야 할 포즈나 행위를 이미 알고 있고 또한 그와 같은 포즈에 의한 이미지는 사실상 자신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시각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미지일 뿐이다. 인물 사진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가식을 말하는 가장 직접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집에 정신병자 기형인 환자 등 인간 조건의 극한 상황에 대한 관상학적 탐구(사진 2)를 하면서 공통적으로 인물 사진 이면에 숨겨진 인간 종류의 생물학적 본질을 폭로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서 아베돈을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자신이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암으로 죽어 가는 80대 부친을 촬영한 일곱 장의 초상사진들(사진 3, 4)이다. 비록 곧 죽게될 사람이지만 아버지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아들에게 좀 더 잘 찍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신의 사진이 보다 현명하게 보이기를 원했다. 훗날 아베돈은 이러한 사진들을 보고 “나의 사진들은 그의 조바심을 보여준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진이 암시하는 것은 죽음이나 실추 혹은 추의 예찬이 아니고 또한 한 인간이 죽어 가는 과정에 대한 생생한 의미적인 전달도 아니다. 그것은 아베돈 자신이 인터뷰에서 “그것은 우리들 중 아무나 될 수 있다”라고 말하였듯이 더 이상 작가의 개인적 초상이 아닌 오늘날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물질 사회의 현실은 마치 반 신성화된 초상처럼 반쯤 허구적 상태에서 모든 것은 코메디를 하고 있다. 미셀 푸코가 우리의 현실에 관해 “우리 모두가 억압자이면서 동시에 피억압자이다”라고 진단한 것처럼 우리 모두가 마스크를 만들고 우리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가짜가 진짜로 허구가 사실로 둔갑하는 마스크의 세계, 이러한 모순은 더 이상 이성이 도달하지 못하는 심연에 존재하는 엄연한 실재(실재태 / 음영 ombre)이면서 동시에 분명한 현실(현실태)이다. 결국 아베돈의 초상사진들은 가식과 진실의 폭로이며 또한 내적 닮음의 불가능한 제스처 즉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공통된 딜레마이다. ●
 
주요 참고 도서
Sans allusion, texte Jame Baldwin, Dial Press, Suisse, 1964.
Portraits Richard Avedon, Herold Rosenberg, (trad. E.) Edition du Chene, Paris, 1976.
Visage de L'ouest, texte Richard Avedon, Edition du Chene, Paris, 1986.
Richard Avedon une Autobiographie, texte Jane Livingston & Adame Gopnik, Schirmer/Mosel, Munich-Paris-Londres, 1994.

주)
① 오늘날 경찰 몽타주와 비슷한 방법으로 재구성한 이미지지만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

② 나찌 예술 혹은 스탈린 예술과 같은 거의 모든 이데올로기 예술에서 예술의 유일한 목적은 집단 체제의 정치적 통치였다. 공통적으로 작품의 아우라를 의도적으로 강조하면서 지배자의 이미지를 거의 신격화하였는데 이는 절대 복종의 정치적 질서(예술의 신격화)를 의미하였다. 유물론적 예술은 이러한 예술의 대척점에서 예술의 세속화와 대중화 즉 “예술의 정치화(현실과 삶의 밀착 / Politisierung der Kunst)”를 기획하였다.

③ 근본적으로 사진은 닮음에 걸려있는 신빙성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된다. 왜냐하면 그림과 비교하여 볼 때 그림은 관객과 일정한 거리(존재의 믿음)를 가지는 반면 사진은 비록 그것이 합성사진이라 할지라도 응시자에게 사진이 찍힌 당시 상황의 절대적 믿음(ca a ete) 즉 반박할 수 없는 과거 존재의 믿음을 강요한다.

④  Herold Rosenberg, “une mediarion sur la ressemblance”, Portraits de Richard Avedon, Edition du Chene(trad. English), Paris, 1976.

⑤  모든 사람은 코메디를 한다 : 라 로슈푸코는 사진 정착 욕조에서 어떤 가장 행렬을 보는 듯한 인상을 가졌다고 말했다. 동양 예술에서 남녀 부부 한 쌍은 얼굴 표정도 없이 에로틱한 행위에 몰두한다고 한다. 기념식과 예절은 일종의 코메디들이다 : 계급제도의 전통과 사회가 보다 관습적이 될수록 외관의 강조는 더욱 굽힐 줄 모른다. (...) 톨스토이가 말하듯 시골 농부조차도 대지의 “자연적” 생산물이 아니다. 과거는 인간에 의해 창안된 두 번 째 자아이다.
Herold Rosenberg, ibid.

 ⑥  얼굴 포착은 인간의 상징이고 또한 영혼의 자리로 간주된다. 특히 눈은 영혼의 창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흔히 화가들은 모델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개인적인 번역(예컨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검은 초상들)을 시행한다. 그러나 어떠한 번역도 허락하지 않는 초상사진의 경우(조형 사진은 제외하고) 내적 세계의 표현 방법은 사실상 모델 선택과 재현상의 극사실이나 흐린 효과의 선택에 국한된다.

⑦ 아베돈은 1945년에서 1969년까지 거의 대부분 중형 카메라 Rolleiflex 5.75×5.75 cm로 작업하였다. 그러나 1964년이후 약 5년 동안 초상사진을 중단하고 나서 1969년부터 그는 다시 초상사진 작업을 했는데 그때 그는 19세기 초상사진의 큰 사진판과 같은 보다 대형 사진판 Deardorf 8×10 pouce (약 21.6×27cm)를 사용했다.
 
글·이경률
(미술사 박사)
 
(사진 1) 사무엘 베케트
(사진 2) 윌리엄 캐츠비, 1963년
(사진 3) 자콥 이스라엘 아베돈, 1971년
(사진 4) 자콥 이스라엘 아베돈, 1973년


 

 

[이 게시물은 권학봉님에 의해 2018-04-04 21:07:16 사진조명 동영상 강의에서 복사 됨]

1 Comments
7 이시 2017.07.23 11:08  
그림이 안 보여요. ^^